해녀 소개

정의: 
바닷속에 산소공급 장치 없이 들어가 해조류와 패류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
내용:
‘해녀海女’는 흔히 ‘잠녀潛女’, ‘잠수潛嫂’라고도 한다. 해녀들은 특별한 장치가 없는 나잠어법(裸潛漁法)으로 제1종 공동어장인 수심 10m 이내의 얕은 바다에서 소라·전복·미역·톳·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며, 가끔 작살로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해녀는 한반도 각 해안과 여러 섬에 흩어져 있지만, 그 대부분이 제주도에 몰려 있다. 우리 나라의 해녀수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되며, 거의 모두가 제주도 해녀들이다.
해녀들은 대부분 농사일을 겸하고 있어서 물질만을 전업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농사일을 치르는 사이에 물때에 맞추어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므로, 이들의 밭은 뭍과 바다에 걸쳐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해녀들은 밭일과 물질을 한나절씩 치르는 경우가 흔하다. 해녀작업은 봄에서 가을까지, 특히 한여름철에 성행하지만 추운 겨울에도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많다.
나잠어장의 구조에 따라서 해녀 작업에는 ‘갓물질’과 ‘뱃물질’이 있다. 해녀들이 떼지어 헤엄쳐 나가서 물질하는 경우를 ‘갓물질’이라 하고, 15명 내외씩 배를 타고 나가서 치르는 작업을 ‘뱃물질’이라 한다. ‘뱃물질’일 경우에는 제각기 선주와 맺은 1년 단위의 계약에 따르며, 선주도 함께 출어한다.
해녀들은 자기 고장에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방이나 외국으로 나가 몇 개월씩 출가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제주해녀들은 19세기 말 부산·울산 등 경상남도 지방으로 출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거쳐 청진에 이르기까지 점점 동해안 일대를 누비며 북상하였고, 남해안·서해안 및 울릉도·흑산도에 이르기까지 본토의 각 해안뿐만 아니라, 객주(客主)의 인솔에 따라 일본 각지와 블라디보스토크, 요동반도의 다롄[大連],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靑島]에까지 진출하였다. 이들은 봄에 나가서 가을이면 돌아왔다. 이들의 출가 이유는 본토의 각 연안이나 외국 바다에도 값이 비싼 해조류와 패류 등이 많았으나 이를 캘 해녀가 없으므로, 그곳에 가서 제주도에서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하여서였다. 1920년대부터 광복을 맞을 때까지 일본 각처에 약 1,500명, 우리나라의 각 연안에 약 2,500명이 출가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광복 이후 출가는 우리나라의 각 연안에 국한되었고, 1960년대 초까지는 경상북도 구룡포·감포·양포 등 영일만 일대에만도 몇천 명씩 집중적으로 나갔는데, 지금은 출가인원이 현저히 줄고 있다.
제주해녀들은 일반적으로 수심 10m, 깊게는 20m의 바닷속까지 들어가 2분 남짓 견딜 수 있고, 추운 겨울에도 물질할 수 있는 내한력(耐寒力)을 갖추었으며, 분만 전후에도 작업을 할 수 있는 등 비상한 기량과 정신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달리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