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문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물질의 속성상 제주해녀는 협력과 협동 작업정신이 유난히 끈끈한 집단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의리가 탁월하게 높다는 특징이 제주 해녀문화 곳곳에 내포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해녀는 물질의 기본상식과 기술을 선배 해녀를 통해 배우며, 특히 생존과 직접 연결된 모든 지식을 선배를 통해 배우기 때문에 제주해녀는 공동체 생활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제주해녀의 공동체 의식과 문화는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제주해녀는 현재 102개 마을 어촌계 중심의 공동체에 참여하며 개개인 해녀는 잠수기술, 문화, 공동체 인식 등의 자격을 인정받은 후 소속마을의 어촌계와 해녀공동체에 가입되어야 비로소 해녀로써 경제활동과 채집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더불어 해녀공동체가 마을과 주민을 위한 도움, 공동작업 등의 공공의제와 도움방안을 정하면 마을 주민과 그 과제를 나누어 분담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남성 중심의 품앗이가 제주에서는여성 중심의 수놀음 문화로 이어지게 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해녀들에게는 수백 년 넘게 이어온 질서가 있다. 그 질서가 해녀들 스스로를 지켜온 질서이자 제주 바다를 지켜온 질서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해녀들의 공동체 문화다. 해녀 공동체가 모여 정하는 자치규약은 제주에서 절대적이다. 엄격한 공동체 문화에는 언젠가 나도 늙고 약해진다는 약자를 이해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원탁 회의 말고, ‘불턱 회의’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며 해녀 간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씩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1985년을 전후하여 해녀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을 설치하였는데 개량 잠수복인 고무옷의 보급에 따라 온수목욕시설이 갖추어진 탈의장은 필수 시설이 되었으며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수눌음’, 가장 약한 사람을 배려하기

먼 바다까지 갈 경우 물질 실력이 가장 낮은 해녀에게 맞추어 배려한다. 홀로 물질하는 경우는 없다. 혹여나 해녀가 아파서 못 나오면 수확물을 모아서 나눈다. 수확은 해녀의 집 등 어촌계 공동작업장에서 함께 작업하여 수익을 나눈다. 이것을 수눌음(품앗이)이라고 한다. 

소중한 바당밭을 깨끗하게, ‘개딲이’

마을 어장을 키우고 가꾸는 것과 함께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해녀들의 몫이다. 육지의 밭과 마찬가지로 바당밭에도 잡초가 우거지기도 하고 갖은 쓰레기로 더러워지기도 한다. 일 년에 두세 번 치르는 어장 청소를 ‘개딲이’라 하는데, 함께 바닷가의 돌이나 바위 등에 자란 잡초 등을 청소한다.

‘할망바다’, 언젠가 늙어갈 모두를 위하여

해녀들은 실력에 따라 계급이 있다. 잠수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눈다. 보통 잠수 시간은 1분 내외지만 폐활량에 따라 상군은 2분 이상, 10미터 이상도 잠수한다. 해녀끼리 하는 말로 하군이 되기 전의 초보 해녀를 애칭처럼 ‘똥군’이라고 부른다. 똥군에서 하군으로, 다시 중군과 상군으로. 그 사이 어딘가에 멈출 수도 있지만, 차례차례 밟아간다면 이것이 해녀의 인생이다. 그러나 해녀의 삶이 상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노쇠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대단했던 상군 해녀라도 다시 실력 없는 ‘똥군’이 된다. 너른 바다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어서 바다에는 똥군이 된 할망들을 위한 바다가 따로 있다. 나이든 해녀들이 물질하는 얕은 바다를 ‘할망바다’라고 부른다.
할망들이 가는 바다에는 상군들이 가지 않는다. 바다는 넓으니까 서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결국 상군도 나이가 들면 할망바다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썰물 때 물 타고 나갔다가 물이 들어오면 같이 따라 들어오는 해녀들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 해녀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